24 동성왕 479 ~ 501 ㅁ 백제왕조계보

24 동성왕 479 ~ 501


488

 

삼국사기 백제본기 제4,

魏遣兵來伐, 爲我所敗

 

남제서

是歲, 魏虜又發騎數十萬攻百濟, 入其界, 牟大遣將沙法名·贊首流·解禮昆·木干那率衆襲擊虜軍, 大破之.

 

[이이화, 고구려..., ] 백제가 북위와 관계를 끊고 중국 남조의 나라들에 접근한 것은 전통적인 외교였다. 백제가 남제와 밀착하였을 때인 488년 북위는 뜻하지 않게 백제를 공격하였다. 그 실상이 자세히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북위는 전선에 있는 군사를 동원하여 작은 규모로 공격했을 것이다.


[이이화, 고구려..., ] 백제가 북위와 관계를 끊고 중국 남조의 나라들에 접근한 것은 전통적인 외교였다. 백제가 남제와 밀착하였을 때인 488년 북위는 뜻하지 않게 백제를 공격하였다. 그 실상이 자세히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북위는 전선에 있는 군사를 동원하여 작은 규모로 공격했을 것이다.

[박영규, 백제왕조실록, 남제서의 다음 기록은 삼굯사기의 편자들을 더 혼란스럽게 했을 것이다. "위나라 오랑캐가 기병 수십만을 일으켜 백제를 공격하였는데 그 경계 안으로 들어가니 모대가 장군 사법명, 찬수류, 해례곤, 목간나를 보내 군대를 통솔시켜, 오랑캐의 군사를 기습하여 크게 물리쳤다" 

me : 이이화씨는 아마 이해가 안 되었던 모양이다. 남제서 정도는 볼 수 있을 분인데도 굳이 소규모 충돌로 해석한다. 그렇다고 해도 국경이 맞닿아 있지 않는데 어떻게 쳐들어 오나? 그리고 만일 수군을 동원해서 바다를 건너 왔다면 국지전 규모로 올 수가 없지 않나. 남제서가 남의 나라 일을 이렇게 과장해서 백제를 칭찬할리도 없고, 또 당시 동원되었던, 사법명 등이 모두 동성왕의 청대로 남제로부터 왕을 제수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. 내가 동성왕이라면 내 밑에서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부하에게 나와 동일한 왕 칭호를 구하지는 않을 것이다. 그럼 사법명 등은 대륙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'왕' 칭호가 필요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. 박영규 씨의 해석이 일리가 있다 싶다. 

검색했더니 윤여동이란 분의 글이 가장 먼저 뜨길래 연결한다. 지도참고용


25 무령왕 ㅁ 백제왕조계보

25 무령왕

<기마민족 정복국가설> 기마민족 정복국가설 - 이도학


1대 온조왕 서기전 18년 10월 ~ 28년 2월 ㅁ 백제왕조계보


1대 온조왕

 

 

 

8(재위 26)

[이이화,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가야를 찾아서, 102] 마한을 습격하여 별로 힘도 들이지 않고 점령해 버렸다. 마한은 옛 신하에게 발등이 찍혀 넘어졌다. 마한의 남은 세력은 남쪽으로 밀려 내려가 껍데기만 남은 처지에서 당분간 명맥을 유지했다.(고이왕 때 마한 정복이 있었다고도 본다)

 

[박영규, 한권으로 읽는 백제왕조실록, 36] 백제의 기습을 받은 마한은 미처 손쓸 틈도 없이 무너졌고, 급기야 원산과 금현 두 성을 제외하고 모두 백제에 항복하는 상황에 처했다. 서기 92월에는 원산과 금현 두 성도 항복하였고, 온조는 그곳 성민들을 모두 변방인 한강 북쪽으로 이주시켰다.

 

※ me : 마한이 완전히 사라진 때(마한이라는 관념이 사라지고, 고구려와 신라에 대응하는 백제인이라는 공통관념이 생긴 때)가 언제인가

 


자전거로 떠나는 일본 속 한국사 탐방 답사'(규슈편) 일본 고대사 관련 링크


자전거로 떠나는 일본 속 한국사 탐방 답사'

http://bike.chosun.com/site/data/html_dir/2015/09/24/2015092402768.html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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