22 문주왕(文周王) 475년 ~ 477년 문주왕(汶洲王 ㅁ 백제왕조계보

22대 문주왕(文周王)  문주(文周), 문원(文園),모도(牟都), 도(都) 475년 ~ 477년 문주왕(汶洲王). 개로왕의 아들, 혹은 개로왕의 동생.


2년(476년)




유송에 사신 파견, 고구려에 막혀 돌아옴

4월

탐라국이 토산물을 바치다. 문주왕이 탐라국왕도 아닌 그 사신에게 3품 은솔 관들을 내려주었다. 이는 백제가 처한 당시의 궁색한 처지에서 비롯된 파격적인 벼슬이었다. [공주시 홈페이지_웅진시대의 공주, 공주시 홈페이지 담당자분(박미숙 씨)은  특이하게도 공주의 역사를 역사책을 서술하듯이 소개하고 있으면서, 이설이 있는 역사적 서술에 관해 명확하게 자기 입장을 서술한다. 가령, 위 같은 쪽에 "곤지는 문주왕이 피살되기 불과 2개월 전에 죽었기 때문이다.(삼국사기에 의하면 문주왕은 그 4년 9월에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3월(3년의 오기인 듯) 9월이 맞다"라고 적는다. 개인의 저술이라면 이런 명확한 태도에 그럴 수 있겠다 수긍할 수도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이런 식의 단정적인 서술이 과연 옳은 태도인가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일 것이다. 확실한 역사만 기록하든지, 삼국사기에 따르면 어떻다 식의 소개면 족하다. 설령 맞다고 하더라도, 자신의 주관적 생각을 지자체 홈페이지에 소개할 것은 아니지 않을까.]

이 페이지 외의 다른 역사소개 쪽들도 모두 이런 식으로 흥미진진하긴 하나 추정, 설을 소설처럼 쓰고 있다. 공주시 역사 소개가 덕분에 다른 지자체와 달리 수십 장이 되고 있다.  

 

덧글

  • 광주사태미국책임인가 2019/01/14 11:56 #

    저 부분은 일본서기가 정확합니다.
    무령왕릉에서 나온 기록과 일치하기 때문이죠.

    삼국사기는 이 시기의 왕위계승이 개로왕(455-475) - 문주왕(475-477) - 삼근왕(477-479) - 동성왕(479-501) - 무령왕(501-523)으로 이어진다고 하고 부자관계는 개로왕-문주왕-삼근왕으로 이어지는 갈래와 개로왕-곤지-동성왕-무령왕으로 이어지는 갈래가 있다고 하였다. 반면에 일본서기에는 문주왕과 곤지가 모두 개로왕의 동생이며 동성왕과 무령왕은 모두 곤지의 아들이고 무령왕의 친부는 개로왕이라고 하였다.
  • 광주사태미국책임인가 2019/01/14 12:02 #

    탐라는 왜와 백제가 임나의 7국과 4읍을 점령할 때 백제가 차지한 것인데 아신왕이 고려에 패하자 왜가 빼앗았다가 저때 돌려준 것입니다. 저때는 백제가 고려에게 패하고 한성에서 쫓겨나 공주로 왔을 때죠. 공주(구마나리)도 왜가 마련해준 것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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